우울이라는 선글라스를 벗어야 합니다.
여름철 강한 태양과 자외선으로부터 우리의 눈과 피부를 지키기 위해서, 또는 패션 소품의 하나로서 우리는 선글라스를 착용합니다. 선글라스를 끼게 되면 자외선은 차단되지만 우리가 보는 세상은 선글라스 색의 강도에 따라서 조금 어둡게 혹은 아주 어둡게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눈은 조리개의 기능이 있어서 홍채를 평상시보다 더 많이 열게 되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게 되면 우리의 눈은 새로운 색깔과 명도에 적응하게 됩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선글라스를 벗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세상이 훨씬 밝게 느껴집니다. ‘아 이렇게 밝았었구나’, 선글라스를 끼고 쇼핑을 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물건을 보면 당시와 색감이 차이가 나는 경험을 해 보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우울은 선글라스와 같습니다. 우울이라는 선글라스는 자기 자신과 미래, 그리고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왜곡시킵니다. 우울의 강도에 따라서 말입니다. 그리고 곧 그것에 적응하게 되서 마치 그것이 사실인 양, 그것에 영향을 받으면서 인간관계를 맺고, 공부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것에 준해서 판단하게 됩니다.
부부간의 불화는 우울을 야기시키지만 결국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파국으로 치닫게 만드는 주범도 우울입니다. 남편과의 갈등으로 우울에 빠진 주부에게 항우울제를 처방하면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왜 나에게 이런 처방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우울증 약을 먹는다는 것이 마치 처벌이라도 되는 듯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건 우울이라는 선글라스를 끼게 된 사람은 자신이며 결국 상황이 파국으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찾기 위해서는 선글라스를 벗어야 하며 이는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과 같습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 바로 이것이 우울증 치료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도를 맞은 사람이 우울해졌는데 치료를 받는다고 무너진 사업이 다시 정상화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래와 세상과 자신에 대한 판단을 훨씬 비관적으로 하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선글라스를 끼고 고른 옷의 색깔은 원색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다릅니다.
판단은 선글라스를 벗고 해야 합니다. 우울증이 좋아질 때까지 판단을 미루어야 합니다. 특히 삶의 중요한 판단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것이 바로 자살입니다.
정신질환, 특히 우울증은 자살의 고위험 질환입니다. 우울증은 정신치료 및 약물치료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치료될 수 있습니다. 다음의 홈페이지에서는 질환과 관련한 정보 뿐 아니라 상담도 받을 수 있으며, 지역의 가까운 정신과 병의원에 대한 자세한 소개도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