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血友病, Hemophilia)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피가 멎지 않는 질환입니다.
역사적으로 혈우병은 서기 5세기경 바빌로니안 탈무드에 처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탈무드에 따르면 서기 2세기 경의 유대인 랍비였던 레베(Rebbe)는 여인의 첫째, 둘째 아들이 할례를 받다가 죽게 되면 셋째 아들은 할례를 받지 말도록 하였습니다.
혈우병이란 병명 자체는 1828년 독일인 의사 숀라인(Sh˝onlein)에 의해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혈우병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A.D. 1819-1901)의 비극 때문이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룩했던 여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왕의 네 아들 중 1명은 혈우병으로 사망했고, 딸들은 영국, 스페인, 독일, 러시아 왕가에 혈우병을 퍼뜨렸습니다. 결국 그들의 자손에서 4 세대 만에 11명의 혈우병 환자와 6명의 보인자 여성이 태어났습니다.
1960년대 초까지 혈우병 환자의 대부분은 30세가 되기 전에 뇌출혈 등의 합병증으로 사망하였기 때문에 평균 수명이 약 25세 정도에 불과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후천면역결핍증후군(AIDS)에 걸리지 않은 혈우병 환자의 경우 평균 수명이 일반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혈우병 환자들의 수명이 정상화 된 것에는 혈액응고인자 제제의 개발과 그것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혈우병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고전적 혈우병으로 불리는 혈우병 A (제Ⅷ 인자 결핍), 혈우병 B (제 Ⅸ 인자 결핍, ‘크리스마스 병’으로 알려짐), 혈우병 C (제 ⅩⅠ인자 결핍), 부혈우병(parahemophilia, V인자 결핍), 가성 혈우병(pseudohemophilia) 혹은 폰빌레브란드병(von Willebrand disease, von Willebrand factor 결핍)과 그밖의 여러 응고인자 결핍이 발견되어 있습니다.
혈우병 A의 발생빈도는 정상출생 남아 5,000명에서 10,000명당 1명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혈우병 B 환자는 이것의 약 1/5정도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폰빌레브란트병의 경우 남녀 모두에서 발생하며 1,000명에 1명 정도로 추정하나 혈우병과는 별개로 분류하는 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약 60만 명의 혈우병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전체 혈우병 환자의 12% 정도가 B형 혈우병 환자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 현재 한국혈우재단에 등록된 환자는 혈우병 A 1,522명, 혈우병 B 345명, 폰빌레브란트병 90명, 혈우병 C 13명, VII인자결핍증 26명 등입니다. 70%의 혈우병 환자는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30%의 환자는 돌연변이로 발생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혈우병 A와 혈우병 B 환자의 50%에서 가족력이 있었습니다. 혈우병은 응고인자의 결핍의 정도에 따라 중증(severe), 중등증(moderate), 경증(mild)로 구별됩니다. 2010년 한국혈우재단에 등록된 환자 중에서 중증 환자는 65.6%, 중등증 환자는 22.2%, 경증 환자는 10.9%로 중증 환자가 가장 수가 많습니다.
혈우병의 증상, 즉 지혈이 안 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혈의 기전을 이해해야 합니다.
지혈 체계(hemostatic system)은 크게 혈관계(vascular compartment), 혈소판(platelets) 그리고 혈장 응고계(plasma coagulation system)의 3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지혈체계는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해 어느 한 가지라도 이상이 생길 때에는 지혈체계 이상을 가져옵니다.
혈관은 우리가 피를 흘리게 되면 자연히 수축이 일어나서 출혈이 일어난 혈관의 부위를 좁게 만듭니다. 한편 혈소판은 지혈에 있어 혈관과 혈장 응고 양쪽에 모두 관여하고, 혈장 응고계에는 13가지 단백질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지혈을 하도록 합니다.
혈장 응고계의 지혈 기전은 전통적으로 내인성 경로(intrinsic pathway), 외인성 경로(extrinsic pathway), 공통경로(common pathway)로 구성된 폭포수 이론으로 설명되어 왔습니다.
내인성 경로(intrinsic pathway)는 활성화된 제 ⅩⅡa인자의 작용을 시발로 하여 아래 그림과 같이 차례로 인자를 활성화하여 트롬빈(thrombin, 응고 인자의 한 종류)을 만듭니다. 외인성 경로(extrinsic pathway)는 제 VII인자의 활성화를 통해 마찬가지로 트롬빈을 만들게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트롬빈이 섬유소원(fibrinogen)에 작용하여 섬유소 중합체(polymer)를 형성하고, 여기에 제 XIII인자가 작용하여 단단한 섬유소를 형성하여 혈액응고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혈우병 A는 위의 경로에서 제 Ⅷ자가 부족하여 생기는 병이고, 혈우병 B는 제 Ⅸ인자가 부족하여 트롬빈을 형성하지 못하여 결국 지혈이 이루어지지 않는 병입니다.
혈우병 환자는 관절과 골격근에서 자연적인 출혈이 많이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관절과 골격근 부위가 조직인자와 활성도(tissue factor antigen and activity)가 낮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치에서는 조직인자(tissue factor)와 활성화 형태의 VII인자의 농도가 낮아 제 Ⅹ인자의 직접적인 활성화가 지혈을 유도할 만큼 충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혈우병은 유전자의 결함에 의해 제 Ⅷ인자 등의 단백질이 충분히 생산되지 않아서 생기는 유전질환입니다. 특히 혈우병 A, 혈우병 B는 성염색체인 X염색체의 유전자 결함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모계 유전질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보고된 바에 따르면 70%의 혈우병 환자만이 가족력을 가지고 있으며, 30%는 가족력 없이 돌연변이로 생긴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혈우병 A, 혈우병 B 환자의 50%에서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 8인자는 F8이라는 유전자의 발현에 따라 만들어지는 단백질입니다. 이 F8 유전자는 X염색체에 존재합니다. F8 유전자는 X염색체의 0.12% 밖에 되지 않지만 길이가 186kb나 되는 거대한 유전자입니다. 이 Ⅷ인자는 간세포 혹은 혈관내피세포, 동굴모양내피세포, 콩팥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혈액 내에 미량으로 존재하지만 혈액 밖에는 1.5 배의 양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8인자는 혈액 속에서 폰빌레브란트 인자(von Willebrand factor)와 결합하여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F8 유전자에 결함이 있게 되면 정상적인 8인자가 만들어지지 않고 혈우병이 생깁니다.
중증 혈우병 A의 경우, 역위형태의 유전자 변형이 약 50%에서 발견되고, 이어 결손형태의 유전자 변형이 많습니다. 중등증, 경증 혈우병 A 환자의 경우 점 돌연변이 형태의 유전자 변형이 가장 흔합니다.
제 9인자는 F9이라는 유전자의 발현에 따라 만들어지는 단백질로 간세포에서 생산됩니다. F9 유전자는 X염색체에 위치한 길이 33kb의 유전자입니다. 9인자는 분자량은 VIII인자의 약 1/5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단백질입니다. 그러나 9인자의 혈액 내 농도는 5μg/mL로 제Ⅷ인자에 비해 50배가량 많습니다. 또한 혈액 밖에는 혈액 내보다 2~3배에 달하는 Ⅸ인자가 존재합니다. F9 유전자의 변형은 F8과는 다르게 과오 돌연변이가 가장 흔하며, 역위나 결손과 같은 유전자 변형은 드문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혈우병 환자는 관절과 골격근에서 자연적인 출혈이 많이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관절과 골격근에 조직인자가 적기 때문입니다. 인체는 관절과 근육에 미세한 출혈이 자주 일어나는데 일반인들은 이것이 효과적으로 빨리 지혈이 되지만, 혈우병 환자들은 지혈이 잘 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지혈이 되지 않은 혈액은 관절이나 근육 안에서 용혈이 되면서 이차적인 손상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더욱 쉽게 출혈이 일어나게 됩니다. 관절에서도 상지 쪽보다 체중부하나 운동량이 많은 하지가 문제가 됩니다.
출혈은 주로 관절을 싸고 있는 활액막이라는 곳에서 일어나는데, 무릎 관절, 발목 관절, 팔꿈치 관절의 활액막은 겹주름이 잡힌 구조여서 기계적인 충격이나 손상에 좀 더 취약합니다. 반면 고관절, 어깨관절 등은 옷소매(sleeve) 같은 구조여서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중증 혈우병 환자의 경우 심하면 생후 1일 째부터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연분만을 한 아기의 머리에 혈종(핏덩어리가 뭉쳐진 것)이 크게 생기거나, 혹은 첫 울음을 유도하기 위해 문지른 등에 혈종이 생기기도 합니다. 또한 탯줄을 끊은 곳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기도 하고, 예방접종이나 혈관 주사를 맞은 곳이 붓기도 합니다. 젖병을 빨다가 입안에 출혈이 생기기도 합니다.
생후 1세 이전에 가장 흔히 나타나는 증상은 기어 다니는 곳에 생기는 멍(피하 혈종)이며 가장 위험한 출혈은 뇌출혈입니다. 뇌출혈의 전형적인 증상, 구토, 기면, 경련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상당히 출혈이 진행된 경우가 많아서 초기 진단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뇌출혈의 위험성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으면 실제로 이것을 조기에 알아채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환아가 평소에도 사소한 출혈 소견이 있으면 미리 가까운 병의원을 찾아 출혈 경향에 대한 진료를 받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환아가 서고 걷기 시작하면서 혈우병의 전형적인 출혈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즉 관절 및 근육 출혈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걷다가 방바닥에 주저앉아서 엉덩이에 혈종이 크게 잡히는 것이 흔히 관찰됩니다. 또한 아이가 잘 걷지 않으려 하고 계속 울기만 할 때에는 반드시 무릎 관절과 발목 관절 등에 대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이 경우 관절에 출혈이 있을 수 있는데, 관절 출혈이 있으면 해당 관절이 붓고 따뜻하며, 그 관절을 펴거나 구부릴 때 아이가 저항하면서 웁니다.
유아기의 환자들은 코피를 자주 흘리게 됩니다. 한번 출혈이 되면 부모님이 겁이 날 정도로 코피가 멈추지 않기도 합니다. 또한 병원에서 편도선 제거술을 하기 위해 수술 전 검사를 하다가 혈우병이 진단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대개는 환자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스스로 출혈 여부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일 흔한 증상은 출혈 부위의 통증 및 관절 운동의 제한입니다. 출혈이 약할 때에는 단순히 통증만 있다가 출혈이 심해짐에 따라 운동 제한과 부종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많은 환자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출혈의 전구증상을 알고 있습니다. 출혈의 빈도는 일반적으로 중증 환자의 경우 주 1회, 중등증 환자의 경우 월 1회, 경증 환자의 경우 년 1회의 출혈을 겪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증 환자는 월 3-4회, 중등증 환자와 경증 환자는 월 1회 미만이 가장 많았습니다.
제 8인자의 결핍에 의한 혈우병 A이든, 제 Ⅸ인자 결핍에 의한 혈우병 B이든 양쪽 모두 출생 직후 자른 탯줄에서 지혈이 안 되거나 채혈 후 지혈이 안 되어 진단을 받는 수가 있습니다. 또는 포경 수술 후나, 이가 나면서, 혹은 나중에 아기가 기기 시작하면서 무릎과 팔목에 출혈이 생기거나 멍이 들면서 알 수 있게 됩니다.
제ⅩⅠ인자 결핍에 의한 혈우병 C은 좀 더 나이가 든 다음에 치과 수술을 할 때에 출혈이나 점막의 출혈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혈액 응고 검사를 통하여 혈우병을 의심할 수 있는데, 혈우병 A, 혈우병 B, 혈우병 C 모두 활성화 부분 트롬보플라스틴 시간(activated partial thromboplastin time: aPTT)이 연장됩니다.
면역학적 방법으로 제 8인자를 측정하면 어떤 혈우병 A, 환자는 VIII인자치가 기존 활성도 측정방법의 FVIII:C보다 높게 나타납니다. 혈우병 A, 환자의 약 5% 정도가 이런 환자들인데, 이들을 CRM(Cross Reactive Material)(+) 환자라고 합니다. CRM(+) 표현형 혈우병 환자는 CRM(-) 표현형 환자에 비해 출혈 빈도나 강도가 덜 합니다. 즉 중증 혈우병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출혈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혈우병 A와 혈우병 B는 둘 다 X염색체 열성 유전입니다. 이중 70%의 환자에게 가족력이 있으며, 30%의 환자는 가족력이 없이(sporadic) 돌연변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절대 보인자는 가족력이 있으며 한 명의 혈우병 아들을 낳은 여성, 두 명 이상의 혈우병 아들을 낳은 여성, 혹은 혈우병 부친을 둔 모든 여성입니다. 잠재 보인자는 가족력은 없으나 한 명의 혈우병 아들을 낳은 여성, 혹은 보인자로 밝혀진 여성의 딸입니다. 보인자 여성의 50%는 정상적인 인자 활성도를 보이고 또한 인자 활성도는 30% 미만이 되어야 증상이 나타나므로, 인자 활성도나 임상증상만을 가지고 보인자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증상을 보이는 증상 보인자는 전체 보인자의 10-15%에 불과합니다. 이들의 주된 증상은 멍, 월경과다, 잦은 코피 등입니다.
한편 여성 혈우병(female hemophilia)은 증상 보인자와 달리 FVIII:C가 낮을 뿐 아니라 출혈의 양상이 혈우병성 출혈, 즉 관절과 근육 출혈을 보이는 환자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여성 혈우병 환자들은 치명적 유전자를 가지게 되어 태중에서 유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몇몇 여성 혈우병 환자들이 생존하여 보고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3명의 여성 혈우병A 환자가 있습니다.
여성 혈우병의 원인들은 보인자 여성이 가진 2개의 X 염색체 중에서 결함이 없는 X염색체가 극도로 라이온화된 경우나 터너 증후군을 가진 여성 보인자, 혈우병 남자와 보인자 여성이 결혼한 경우, 혈우병 A 보인자인 여성이 폰빌레브란트 병에 이환한 경우 등입니다.
보인자 여성을 제대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응고검사와 더불어 유전자 검사를 시행해야 합니다. 유전자 검사에는 간접진단법으로 불리는 제한효소 단편길이 다형성(RFLP)을 이용한 유전자의 연관분석(linkage analysis)과 DNA 서열분석을 이용한 직접진단법이 있습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혈액을 이용하여 실시합니다. 연관분석은 유전자재조합에 따른 오진율이 1-5% 정도이며, 필요시 가족이 모두 함께 검사를 받아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DNA 서열분석을 이용한 직접진단법은 99.5%이상 정확히 진단 내릴 수 있고, 환자와 검사를 원하는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F8이나 F9 유전자 전장에 걸친 염기서열 분석은 시간과 비용을 많이 소모합니다. 그래서 여러 연구자들은 먼저 유전자 결함이 의심되는 부위를 선별검사로 가려내고, 그 부위에 대해서만 염기서열 분석을 하기도 합니다. 이때 쓰이는 선별검사로는 SSCP(Single Strand Conformation Polymorphism, CSGE(Conformation Sensitive Gel Electrophoresis), dHPLC(denaturing High Performance Liquid Chromatography) 등이 있습니다.
산전 진단은 보인자 여성이 임신했을 경우 태중의 아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남자이면 혈우병 환자인지 아닌지, 여자이면 보인자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한 검사입니다.
태아의 유전자를 얻는 방법은 크게 융모막검사, 양수천자, 제대혈 채취 등이 있습니다. 융모막 검사는 임신 10주에, 양수천자는 15주에, 제대혈 천자는 20주에 시행할 수 있습니다. 이중에 융모막 검사가 가장 빠른 시기에 시행 가능하고, 획득되는 DNA 양이 많기 때문에 선호됩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태아를 유산시킬 위험성이 3%에 이르기 때문에, 어떤 병원들은 융모막 검사를 시행하지 않고, 양수검사를 통해 산전 진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혈우병의 근본적인 치료법은 현재까지는 없는 상태입니다. 혈우병은 단일 유전자 질환으로 유전자 치료의 좋은 후보가 될 수 있지만, 현재까지 시행했던 임상연구들은 수개월간의 효과만 입증되었습니다.
말기 간경변이나 혹은 간암을 앓는 혈우병 환자들에게 간 이식을 시행하여 혈우병을 완치한 보고가 전 세계적으로 20여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간이식 수술 자체의 복잡성, 이식 후 따르는 부작용 및 삶의 질 저하 등을 고려할 때 혈우병의 완치만을 위해 간이식을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1970년 초반에 일본에서는 먹는 응고인자를 개발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응고인자는 기본적으로 단백질이어서 장내에서 흡수가 되기 전에 이미 소화가 되어 버려 응고인자로서의 활성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 혈우병의 주된 치료방법은 응고인자 보충요법(replacement therapy)입니다. 응고인자는 혈장유래 응고인자와 유전자재조합 응고인자가 있습니다. 혈장유래 응고인자는 3,000명 정도의 일반인 혈장에서 필요한 응고인자를 뽑아내서 만든 약제입니다. 유전자재조합 응고인자는 F8 혹은 F9 유전자를 vector라는 매개체를 이용하여 유전자재조합 기술로 만드는 것입니다. 혈장유래 응고인자는 천연의 것이라 응고인자에 대한 항체가 덜 생기는 반면 바이러스 등의 감염 우려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전자재조합 응고인자는 감염의 우려는 적은 대신 항체 발생의 위험성이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혈우연맹의 공식적인 입장은 두 가지 종류의 응고인자 제제 모두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혈장유래 제 Ⅷ인자든지 유전자재조합 Ⅷ인자든지 상관없이 Ⅷ인자를 환자 체중 1kg당 1U의 용량을 투여하게 되면 환자의 응고인자 활성도는 대략 30분 내에 2%가 상승합니다. 만약 어떤 환자의 응고인자 활성도를 50%로 올리고 싶다면 환자의 체중(kg)×25U 하면 투여 용량이 되는 것입니다. 혈장유래 9인자의 경우는 체중 1kg당 1U를 투여하면 1% 활성도가 증가하게 됩니다. 반면 유전자재조합 9 인자의 경우는 15세 이상 성인은 0.8%, 15세 미만 아동은 0.7%가 상승하게 됩니다.
응고인자는 정맥주사를 통해 공급하게 되는데, 인자를 공급하는 방식은 출혈이 있을 때만 투여하는 ‘필요시 보충요법’(on-demand)과 주기적으로 인자를 보충하여 자연적인 출혈을 막기 위한 ‘유지요법’(maintenance therapy)이 있습니다.
‘필요시 보충요법’의 경우 출혈 부위와 정도에 따라, 응고인자에의 접근성에 따라 권장 투여량이 다릅니다. 관절 출혈의 경우 출혈이 시작된 지 3시간 내에 응고인자를 투여하게 되면 80%의 출혈이 단 1번의 투여로 지혈이 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출혈 시에는 되도록 신속히 응고인자를 정맥 주사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유지요법’이란 주기적으로 응고인자를 투여하여 인자활성도의 기저치를 1% 이상 (혈우병성 관절병증이 있는 경우 3%)으로 유지하여 자연출혈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중증 혈우병 환자를 인위적으로 중등증 환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출혈 빈도를 낮추게 됩니다. 자연출혈과 관절병증을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라서 ‘예방요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혈우병 A 환자에 대한 ‘유지요법’은 1958년에, 혈우병 B에 대해서는 1972년에 스웨덴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혈우연맹(WFH)은 1995년에 유지요법을 중증 혈우병 환자를 위한 합리적 치료법으로 권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응고인자 활성도가 150% 이상이 되면 약 25%의 환자에서 정맥 혈전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혈우병성 관절병증은 혈우병의 대표적인 합병증입니다. 혈관 밖으로 나온 피는 관절 안에 고였다가 서서히 용혈이 되는데, 이때 용혈되는 피에서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들이 나와서 뼈를 파괴하게 됩니다.
특히 초기에는 활액막에 염증을 일으키는데, 염증이 생긴 활액막은 증식되고 손상에 약해져서 쉽게 재출혈을 일으키게 됩니다. 때문에 혈우병 환자의 활액막염은 즉시 치료되어야 합니다. 또 활액막염이 없다하더라도 일반 혈액농도의 50% 정도의 혈액에 4일만 관절이 노출되어도 연골의 합성이 감소하고 파괴가 증가됩니다. 이 때문에 혈우병 치료자들은 심한 관절출혈의 경우에는 관절에서 직접 피를 뽑아내는 시술을 하게 됩니다.
대개 어린 시절에는 뼈에 눈에 띄는 차이가 없을지라도 보통 15-25세 사이에는 혈우병성 관절병증이 뚜렷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혈우병 환자는 평균 50년간 혈우병성 관절병증으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혈우병 중증 환자의 약 70%가, 중등증 환자의 약 40%가 혈우병성 관절병증에 걸려 있습니다.
응고인자를 투여하면 일부 혈우병 환자는 이것을 내 몸의 성분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여 응고인자를 파괴하는 항체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치료 목적으로 투여한 응고인자가 항체에게 파괴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항체는 단 한 번의 투여에 대해서도 만들어질 수 있지만, 가장 많이 생기는 시기는 4번 정도 투여를 했을 때입니다. 항체가 만들어진 혈우병 환자의 98%는 50번 투여하기 전에 항체를 만들어 냅니다. 중증 혈우병 A 환자의 경우 항체 발생율은 15-50%(평균 30%)에 이릅니다. 경증/중등증 혈우병 A의 3-13%에서 항체가 발생합니다. 중증 혈우병 B 환자는 혈우병A에 비해 훨씬 적은 3.9%에서 항체가 발생합니다. 환자의 연령으로는 대부분 만 20세 이전에 응고인자에 대한 항체가 발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응고인자를 맞았는데도 지혈이 안 되는 느낌이 드는 경우에는 즉시 항체검사를 시행해야 합니다. 또 응고인자 투여 후에는 일정한 주기로 항체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널리 쓰이는 항체검사는 베데스다분석(Bethesda Assay)입니다. 이 검사는 항체의 중화능력(neutralizing activity)을 이용하여 항체를 측정합니다. 37℃ 수조에서 2시간(A형 혈우병) 혹은 10분(B형 혈우병) 혈장을 배양한 후 대조군 혈장의 50%까지 응고인자 활성도를 낮추는 항체의 양을 측정합니다.
베데스다분석 상 항체가가 5 BU/mL 이상인 환자를 고(高)항체 환자라고 칭하고, 그 이하를 저(低)항체 환자라 칭합니다. 저항체 환자에게는 출혈 시에 먼저 응고인자를 대량으로 투여하는 ‘대량요법’을 시행합니다. 그러나 고항체 환자에게는 항체를 우회해서 지혈을 유도하는 우회제제(bypassing agent)를 투여하게 됩니다. 우회제제(bypassing agent)는 항체의 주된 표적이 되는 제 8인자 및 제 9인자를 우회하여 지혈이 되도록 유도합니다. 응고인자 제제는 고가의 의약품이지만 특히 이 우회제제는 매우 비싸서 항체 환자의 치료에는 많은 경제적 부담이 따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체 환자에서의 우회제제의 지혈효과는 비항체 혈우병 환자에서의 응고인자 지혈효과 보다 약 20% 정도 떨어집니다. 따라서 응고인자에 대한 항체를 영구적으로 없애고 제 Ⅷ인자나 제 Ⅸ인자로 지혈을 유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며 경제적입니다. 이러한 치료를 면역관용요법(Immune Tolerance Induction Therapy)이라고 하며, 그 성공률은 70-80%로 알려져 있습니다.
1980년대에 미국과 유럽에서 HIV와 HCV에 감염된 많은 혈우병 환자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는 혈장유래 응고인자를 투여하고 발병한 것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고 이후 각국 정부는 응고인자로 인한 감염을 줄이기 위해 충실한 공여자를 선발했을 뿐 아니라, 단백질 순화과정을 통해 세균을 제거하였습니다. 적어도 16개의 바이러스가 혈액 제품을 통해 전염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바이러스 불활화 공정이 개발되었습니다.
90년 이후 용매-계면활성제(Solvent/detergent)법, 저온살균법, 나노 필터링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인하여 90년 이후 혈장유래 응고인자를 투여 후 C형 간염, AIDS 바이러스가 감염된 사례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 및 프리온 감염의 우려는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90년대부터는 감염의 우려가 적은 유전자 재조합 제제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2003년 현재 70% 정도의 환자가, 영국은 광우병의 위험성 때문에 거의 100%의 환자가 유전자 재조합 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환자의 34% 정도가 C형 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던 적이 있고, 약 12%는 현재도 보인자 상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보인자 여성의 50%는 응고인자 활성도가 정상으로 나오고, 70%는 아무런 증상이 없습니다. 따라서 보인자의 진단을 하려면 응고인자 활성도 검사 뿐 아니라 유전자 검사를 반드시 받으셔야 합니다.
혈우병 자체에 좋은 음식은 없습니다. 대체로 지혈을 촉진하는 음식은 권장할 수도 있으나 지혈에 지장을 주는 음식이나 약제는 피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지혈을 촉진하는 음식으로는 녹즙 등의 엽록소 함유 음식과 연근 등이 있습니다. 혈액 순환을 개선한다고 알려진 은행, 생강, 마늘 등은 혈소판의 응집을 방해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 드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밖에 인삼, 알로에 등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혈우병 환자의 출혈은 대부분 관절과 근육입니다. 특히 하지 관절의 출혈이 잦습니다. 과다 체중은 무릎과 발목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혈우병 환자는 날씬한 체중을 유지해야 합니다. 추천되는 운동은 수영(평형 제외), 아쿠아로빅, 자전거 타기를 권장합니다. 이런 운동은 체중 감량 뿐 아니라 관절에 무리 없이 근력 강화를 시킵니다. 또한 운동을 하면 일시적으로 응고인자 활성도가 증가하여 출혈을 줄일 수 있습니다. 걷기는 하루 30분 이상 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종류의 운동이든 몸이 피곤할 정도로 하면 근육의 피로를 일으키고 이는 출혈의 원인이 되므로 가벼운 피로를 느낄 정도로 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축구, 농구, 태권도 등의 접촉성 경쟁 운동은 피해야 합니다. 또한 운동 전 30분에 15%이상 응고인자 활성도를 유지하기 위해 주사를 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네. 가능합니다. 유치의 경우는 오랜 시간 흔들리다가 뽑히기 때문에 따로 응고인자 투여가 필요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외의 경우에는 발치 30분 전에 응고인자 활성도를 60-70%로 올리고 발치가 가능합니다.
혈우병은 대표적 X염색체 열성 유전질환으로 모계 유전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혈우병 환자가 반드시 그 어머니에게서 질환을 물려받는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30%, 우리나라의 경우 50%의 혈우병 환자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닌 환자 본인으로부터 발생된 돌연변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자에게는 X염색체가 2개이기 때문에 결함 있는 X염색체가 1개가 있어도 다른 한개가 응고인자를 생산하므로 혈우병 환자가 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만약 여자의 2개 염색체가 모두 결함 있는 염색체이면 그런 여아는 대부분 어머니 태중에서 사산을 하게 됩니다. 반면 남아는 X염색체가 1개이고, 이것이 잘못되면 당연히 응고인자를 만들 수 없어서 혈우병 환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자의 경우도 본문에서 말한 몇 가지 원인에 의해 여성 혈우병 환자가 될 수 있습니다. 혈우병 환자와 같은 관절 및 근육 출혈의 양상을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6명의 여성 혈우병 A 환자가 있습니다.
혈우병 환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아동기에는 코피가 잦습니다. 혈우병 환자의 코피는 증상의 심한 정도에 따라 쉽게 지혈이 될 수도 있고 응고인자 주사를 맞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증의 혈우병 아동이 밤에 자다가 코피가 났는데, 아무도 그것을 몰랐다면 다음날 아침 상당히 많은 출혈로 인하여 아이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출혈을 금방 알아채게 되며 이때 먼저 혈관수축제를 솜에 적셔 코를 패킹하고 냉찜질하며 압박을 하면 지혈이 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도 지혈이 안 되면 응고인자 주사를 맞게 됩니다.
대부분의 혈우병 아기는 일상적인 신체 접촉으로는 출혈이 생기지 않습니다. 걷다가 주저앉거나, 부딪히거나, 혹은 지속적으로 무릎으로 기는 경우 피하출혈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방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거나 가구의 모서리에 덧댐 등을 권장합니다.